폭력에도 도(道)가 있다 - 폭박(暴迫) 이명박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염치없는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토요일은 느긋하게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볼 참이었다. 헌데 지인의 전화를 받고 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자 정교했던 내 주말 스케줄은 바스러지고 머리와 가슴이 열폭해서 지금처럼 키보드 테러리스트로 전향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수많은 지원자가 쇄도해서 폭압정권 끝장내기 청약신청 경쟁률은 당신이 장담한 주가 3000 포인트를 가볍게 상회해 꼭짓점을 쉬이 예측 못할 지경이 되어 치고 빠지기 힘들 테니 이따(?) 봅시다. 그리고 이참에 널브러졌던 당신 명칭과 별명도 산뜻하게 갈아줄 테니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일통해서 쓰길 권장합니다.

어이, 폭박(暴迫)! 그래도 옛날에는 이 대통령, 이명박씨, MB 등 심히 아니꼬웠지만 그나마 중립적인 호칭으로 대했는데 이제부터는 당신을 실체 그대로 부르겠소이다. 당신이 사람을 힘으로 핍박해서 죽음으로 내모는 재주를 보니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을 죽이는 달건이의 칼부림은 실소 터질 수준이더군요. 아마 당신도 '아차' 했겠지요. 설마 노무현씨가 자살까지 하리라고는 예상 못했을 테고 인터넷에서 들끊는 노무현씨 추모 열기를 보며 그를 극한으로 몰았다는 자책감에 열심히 복기(復棋) 중일지도 모를 일이죠.

우리는 용산 참사에서 학습(?)했듯이 폭박 정권 들어서고 사람 죽어나는 일을 환율 급등 릴레이 쇼처럼 일상사로 받아들였지만 노무현씨 자살 사건은 폭박(暴迫) 정권의 본색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됩니다. 정치인에게는 정도(政道), 장사꾼은 상도(商道)를 지켜야 되고 하물며 조폭들도 폭도(暴道)라는 것이 있습니다. 폭도(暴道)마저 저버렸으니 폭박(暴迫)에게 남은 것은 시민사회의 응징일 뿐입니다.

그간 노무현씨에게 가한 일련의 검찰조사와 수구언론의 압박은 정치보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씨가 백지장처럼 깨끗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죄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면 됩니다. 그런데 특정인을 겨냥한 편파수사는 비리 규명이라는 가면을 쓴 저열한 정치보복입니다. 따지고 보면 정치보복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기에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명박이 정치보복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머리일리 만무하고 남들 하는 거 응용해서 했겠지만 거기에도 나름 폭도(暴道)라는 지켜야 될 불문율이 있습니다.

   조폭보다 못한 비열한 거리의 이명박

영화 <비열한 거리>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더군요. 주인공 병두(조인성)가 속한 조직이 다른 조직과 패싸움이 붙었는데, 중간보스인 상철(윤제문)이 상대편 조폭의 배를 칼로 찔러 죽게 만듭니다(실제로는 죽었다는 암시로 묘사). 나중에 윗선에서 뒤처리를 했는데 병두의 꼬붕이었던 종수(진구)가 싸움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며 상철의 처사를 못마땅해 합니다.

영화를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렸는데 오늘 노무현씨 자살 소식을 듣자 이 장면이 아찔하게 오버랩되더군요. 조폭들도 무조건 사시미로 상대편 죽이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경찰의 개입이 확대되고 자칫하면 조폭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들 세계에서 부득이하게 누군가를 죽여야 될 경우가 아니라면 난투극을 벌일 때 적당히(?) 칼로 긋거나 몽둥이로 때리는 수준에서 그칩니다. 영화에서 병두가 상대 조직과 싸울 때도 치명적인 부분은 피하면서 칼질을 했던 이유가 오늘에야 이해되더군요. 이것이 나름 조폭계의 폭도(暴道)라는 법칙이겠죠.

유형이냐 무형이냐 또는 복합됐느냐의 차이일 뿐 역시 폭력을 쓰는 정치보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정치보복은 조폭처럼 비등한 세력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행사하는 힘이기에 그 폐해는 휠씬 크게 됩니다. 선을 넘게 되면 오늘처럼 자살이라는 비자발적인 살인이 횡행하며, 칼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 사람을 죽인 건 아니라는 야비한 수사(修辭)로 무마시키는 저질 시트콤을 보게 됩니다. 혹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간사한 선동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노무현의 장렬한 메시지

등산객에서 낙마객으로 돌변한 노무현씨의 심정은 사뭇 참담했을 겁니다. 자살이라는 예상치 못한 극단의 선택은 그의 처지가 뉴욕 마천루에서 난타당하다 추락하는 킹콩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킹콩은 지키고 싶은 대상이라도 있었지만 그는 한때 자신을 추앙하고 따르던 사람과 대중에게 왕따 당해 완전 고립된 상태였죠.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라는 대사가 있는데 노무현씨는 '좌파 독약, 청렴 독약' 중 어느 것도 마실 수가 없었겠죠.

고인을 두고 거북한 말이지만 어쩌면 자살은 노무현다운 노무현스러운 결단이었다고 봅니다. 미웠던 고왔던 한때 같은 배를 탔던 민주당이 엄호사격 한번 제대로 못하고 딴청피운 현실을 보며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미래겠죠. 민주당이나 진보세력은 MB 정권의 폭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차기 정권 획득 가능성의 토대가 될 차세대 주자들도 난파된 상태에서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노무현씨가 자신을 발판삼아 이명박과 MB 정권의 본질과 속성을 시민사회가 다시 자각하는 계기로 그래서 시민사회가 다시 항쟁하는 시발점으로 자신을 촛불의 심지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사태는 일시적이 아니라 저들의 불변하는 태생적 기질이자 결코 멈추지 않는 법과 원칙을 기만하는 추월행위의 연속동작일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바꾸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암울한 미래와 사회구조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합니다.

노무현은 죽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신격화되는 것은 피해야 됩니다. 노무현도 분명 잘못한 일이 있지만 그를 비난하는 왜곡된 논리는 벗겨줘야 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봉하마을의 비석이 아니라 비석에 새겨줄 올곧은 문구이겠죠.

   사그라진 촛불을 햇불로 승화시키자

지금 우리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노를 인터넷과 술자리에서 삭히는 것으로 머물면 안됩니다. 이미 우리는 정치인에 절망했고 대항마인 진보세력의 사분오열로 저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내구성은 빈혈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2008년 촛불 집회처럼 일반 시민들이 다시 결집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괴롭고 힘들겠지만 우리는 절대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그건 저들의 오만함을 살찌울 뿐입니다. 입술을 격렬하게 깨물며 스스로 상흔을 남겨 오늘의 고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역사와 정의의 심판을 내려야 합니다. 한때 현실에서 넘실거렸던 촛불은 사그라졌지만 노무현씨 자살을 계기로 우리는 마음속에 들불을 지펴 현실에서 햇불로 승화시켜야 됩니다. 그날까지!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Written by Cloud

by cloudplanet | 2009/05/23 17:55 | Cloud + Life | 트랙백 | 덧글(0)

치명적인 매력은 고전(古典)에 있다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리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못난이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놀림감으로 삼았다. 네 주제에 감히 누구를! 어릴 적 많이 듣던 이야기 구조. 아마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한 동화나 설화가 있을 것이다. 뭐 과거를 꼬집어 낼 필요도 없이 현실에서도 많이 있는 스토리 아닐까. 초딩이나 중딩 때로는 고딩 시절에 잘 나가는 퀸카 여학생을 맘에 품고 혼자 낑낑(?)거렸던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으리라.

이 흔한 소재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쉽지 않겠지. 내공이 약하면 전개와 결말이 빤히 보여 식상한 하품이 쏟아질 것이다. 유치하면 신파로, 심각하면 애정 집착극으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훌륭한 작품은 - 그것이 문학 또는 영화나 공연이든 - 신선한 소재와 매력적인 이야기 그리고 살아있는 캐릭터의 조화로 빚어진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지만 진정으로 시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작품은 뻔한 소재를 내밀하게 파고든 시대정신의 결과물이라고 확신한다. 아집(我執)스런 내 호언은 <노틀담의 꼽추(The Hunchback of Notre Dame)>가 입증했다.

뮤지컬〈노트르담 드 파리(Notre-Dame de Paris)>를 봤다. 결론은 명불허전(名不虛傳). 막이 내렸어도 며칠 동안 내 입가에 되뇌는 꼽추 콰지모도(Quasimodo)의 서정적인 음악은 사랑의 비애를 반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나 권력이 아닌 결국 사랑이라는 메시지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쓴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이 뮤지컬은 소설속의 인물과 갈등 구조를 그대로 담아냈다. 당시의 낭만주의 성향이 대중공연인 뮤지컬에도 진하게 반영되었는데 감미로운 노래와 프랑스적인 예술 감각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이다.

스토리는 평이하지 않지만 공연은 이를 쉽게 풀어냈기에 이해하기는 쉽다. 심각한 남녀관계의 대명사인 삼각관계를 넘은 사각관계가 주된 갈등구조이지만 그 속은 당시 프랑스 계급사회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어 가볍게 넘길 작품은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16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Esmeralda)를 두고 노트르담 대성당 주교 프롤로(Frollo), 파리시의 근위대장 페뷔스(Phoebus), 꼽추 콰지모도가 각축전(?)을 벌인다. 겉만 보면 분명 사랑 싸움 이야기다.

나는 설익기 쉬운 사랑 소재를 전 인류적인 공통분모로 승화시킨 빅토르 위고의 문학성에 감탄했다. 종교권력을 대표하는 프롤로, 지배계층을 상징하는 페뷔스, 프랑스 사회의 약자들인 민중계층의 대변자 콰지모도와 집시들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 직전 계급사회의 모순과 삼부회(三部會)의 갈등을 보여준다. 어디에도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의 상징이리라.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것은 자유이며, 남과 나를 차별하지 않는 평등에 있다는 진리가 뭉클하게 전달된다.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소유하려는 프롤로와 페뷔스의 욕망은 여자를 소유하려는 숫컷의 본능으로 한정시킬 수 없었다. 인간 갈등의 시초는 자유를 구속하고 억제하려는 시도와 권력욕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 현대에도 감동을 주는 것은 왜일까. 이미 인간 역사에서 계급 사회는 고대 유물로 취급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빅토르 위고가 품었던 문제의식이 현재에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매우 불길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계급’을 운운하면 좌파나 친북이라는 가소로운 명찰이 붙겠지. 나는 우리가 그리고 인류가 완연히 계급 사회에서 벗어났는지 의심스럽다. 고대의 노예 제도는 사라졌지만 현대의 대다수 대중은 일종의 임금(월급) 노예가 아닐까. 한달 월급 때문에 원하지 않는 직장과 일을 해야 되는 처연한 현실을 보면 과연 우리가 자유인일까. 먼 훗날 인류의 역사는 우리 시대를 평가할 때 또다른 형태의 노예가 있었다고 할지 모른다. 자유인으로 착각한 노예였다고.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척박한 질주는 신빈곤층을 양산했고 대물림되는 학력세습과 강남 8학군 진지화는 신종 계급 질서의 재편을 마친 상태이다. 중학교도 국제중학교를 가야 그나마 신계급의 막차에 탈 기회가 있는 세상인데 뭘 더 바랄까. 이게 바로 계급 사회 아닌가? 고대의 노예는 신분 구조의 모순을 알기에 저항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오인(誤認)된 자유인은 해고와 월급 삭감에만 반응할 것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치명적이다. 시대를 꿰뚫는 광채나는 고전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중후한 시대정신이 오래된 작품을 고전이라 부르게 만든다. 그래서 고전은 중요하며 원소스 멀티유징의 진가도 고전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하지만 우울하다. 왜 뮤지컬을 보며 지른 감탄과 박수가 현실에서는 들리지 않는가. 관객들은 에스메랄다를 죽게 만든 불편부당한 권력과 사회구조에 분노했을 텐데 왜 우리 사회의 모순에는 반발하지 못할까. 시대와 나라가 달라도 그것은 화장만 다르게 한 쌍둥이 모순인데 화장이 너무 짙어 현혹된 걸까.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Written by Cloud

 

by cloudplanet | 2009/03/26 16:16 | Cloud + Musical | 트랙백 | 덧글(0)

절대권력(絶對權力) 돈주앙 - 뮤지컬 돈주앙 리뷰

 

나는 가끔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침 햇살과 상관없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일어나서 어딘가로 달려가고, 특히 한국에서 집 평수 넓히려고 평생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삶이 이리도 구차한가라는 회의가 생긴다. 그렇다고 많은 이가 갈망하는 성공의 개선문 통과 확률도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삶에 매달리게 만들까. 

인생이 무상해지는 것 같으면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라고 추천하는 사람도 있더라. 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서평을 보니 해법은 ‘사랑’ 이라는 단어로 뭉쳐지는 것 같다. 너무 뻔한 소리라고? 그럴지도. 하지만 톨스토이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현자들이 사랑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합창했지만 인류가 이를 진실로 베풀거나 느낀 적이 있을까. 인간 역사에서 전쟁과 폭력이 넘실거린 건 그만큼 사랑이 절실한 아이템이라는 반증이겠지.

사랑에는 다양한 가지수가 있다. 신을 향한 사랑,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 남녀 사이의 사랑, 동성애, 생명에 대한 사랑 등 애정을 갖는 대상만큼 종류는 거의 무한대. 이 가운데 공통분모가 가장 넓은 사랑은 남녀의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이성을 보는 눈이 뜨이면서 사랑을 얻으려는 투쟁(?)을 시작한다. 사랑의 성공은 감미롭고 실패는 쓰디쓰지만 사랑만큼 인간을 달콤하고 매혹적으로 사로잡는 것이 있을까. 누군가 ‘실패한 사랑은 쓰라린 추억을 남기고 성공한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긴다’ 고 했지. 그래도 인간은 사랑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폭주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돈주앙은 경쾌하다. 스토리의 흐름이 빠르며 관능적인 플라멩코춤이 관객의 호흡을 빨아들인다. 배우들의 노래 솜씨도 수준급이라 눈과 청각을 자극하며 희열을 향해 가파르게 때로는 숨고르기를 하며 정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뮤지컬에서 돈주앙의 작업노하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뮤지컬 돈주앙은 숫컷들의 기대와는 달리 돈주앙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아니 돈주앙 같은 호색한한테도 고뇌가 있다니 누굴 약 올리려는 건가?

돈주앙은 요즘 말로 넘사벽이다. 숫컷들의 절대로망이라고 해두자. 모든 숫컷들은 여자들의 사랑을 얻으려 하지만 성공확률은 높지 않다. 설령 사랑을 얻었어도 헤어질 수 있고 미움과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런데 돈주앙은 수많은 여성들과 스캔들을 생산했어도 누구 하나 그를 원망했던 여자가 없다고 한다. 이게 바로 수컷들이 꿈꾸고 부러워하는 필살기이리라. 도대체 비결이 뭘까. 여자들도 돈주앙이 희대의 바람둥이인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는?

나는 뮤지컬 돈주앙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관람할 때 유쾌하고 스트레스 풀어줄 정도의 공연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돈주앙을 소재로 삼은 대작 뮤지컬이 심각한 애정물 버전일리 없고 설령 돈주앙의 노하우가 노출된다고 한들 아무나 차용한다고 효력이 통하지는 않을 테니까. 더구나 스페인에서 온 플라멩코팀, 특히 마리아 로페즈의 관능적인 분위기와 춤에 홀려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영화 같은 1막의 빠른 전개에 지루할 간격이 없었고 돈주앙의 여성편력과 이로 빚어지는 갈등과 대립구도를 가뿐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깊어질수록 돈주앙의 고민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가문 좋고 돈 많고 잘생기고 말발 뛰어난 돈주앙한테 무슨 고민이 있을까.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도 속 모르는 고민이 있을 거라는 얄미운 투정으로밖엔 이해되지 않았다. 평민들은 하루에 얼마를 지출할지 골치 아픈 셈을 하고 직장과 가정의 충실한 의무를 지키려 혹사당하는데 고작(?) ‘이 죽일 놈의 인기가 문제야’ 라는 문제의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나가는 한량의 넋두리를 치명적인 유혹으로 느낄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 그래서 계급적인(?) 색안경으로 돈주앙을 불편하게 보고 있었는데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한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으려는 태도에 오한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극 중에서 돈주앙과 그의 친구 돈 카를로가 반복적으로 언급한 ‘자유’ 라는 대사 때문이었다.

돈주앙은 자유를 원하고 구속받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돈주앙이 결국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안다. 후회하면서도 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데 왜 우리는 결말을 알면서도 감행하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을 떠나가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비통해하는 것은 여자의 숙명으로 봐야 할까. 그게 아니었다! 나는 깜빡 속았다.

나는 처음에 돈주앙을 스페인의 매력적인 플레이보이 이야기로 봤는데 이는 겉모습에 불과하다. 돈주앙은 인간의 권력의지와 이를 추종하는 대중들의 몰개성을 직시한 작품이었다. 권력은 사랑이라는 감정과 상통하는, 사랑과 대척점에 있으면서 절묘하게 겹쳐있다. 정치가와 플레이보이는 인간의 권력의지를 형태만 다르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정치가는 권력을 얻기 위해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그리고 사랑(표)을 얻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훌 지나간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은 상황에 따라 돌변한다. 대중들은 자신을 저버린 정치가를 미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하며 또다시 선택을 한다. 버림받을 줄 알면서도 돈주앙을 쫓는 여인들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많이 보는 풍경 아닌가. 우리는 그간 우리가 스스로 뽑은 지도자들을 얼마나 저주했나. 온갖 희망과 열광으로 세례 받은 지도자들이 유통기한 지나기도 전에 불량품으로 전락했다.

나는 2막에서 돈주앙이 결투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 장면이 몹시 쓰라렸다. 그간의 악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속죄하는 의미였지만 난 그 장면에 가슴이 후덜거렸다. 항상 자유를 꿈꿨다는 돈주앙은 바로 절대권력의 모습이 아닌가! 절대권력은 책임을 지지 않기에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다. 구속받지 않는 사랑이 책임지지 않는 절대권력과 무엇이 다른가. 돈주앙이 죽기 직전 고민하는 장면에서 나온 공중의 칼은 ‘다모클레스의 검(the sword of Damocles)’을 상징한 것으로, 그가 절대권력의 아슬아슬한 정점에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 절대권력으로 남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이다. 죽게 되면 책임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역사의 심판이 있다고? 난 그것을 신뢰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죽은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그 시대가 나았다고 칭송한다. 그렇다면 지금 증오하는 정치가들이 죽고 나면 언젠가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나는 돈주앙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숭고해 보이는 감정이 절대권력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관객들이 돈주앙의 피날레에 기립박수를 치며 커튼콜의 환호성이 울려 퍼질 때 불길한 생각이 퍼져갔다. 돈주앙의 사랑과 최후에 감동받았다면 권력자에 대한 맹종도 그만큼 쉬워지지 않을까. 돈주앙의 판타지에 끌리듯이 우리를 나긋하게 해줄 것 같은 권력자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이미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시대를 초월한 대중의 운명인가. 아니면 공연과 현실은 다를 뿐이라며 위안을 삼아야 되나. 돈주앙. 두려웠다.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From Cloud

 

 

 

 

 

 

 

 

 

 

 

by cloudplanet | 2009/02/12 21:00 | Cloud + Musical | 트랙백 | 덧글(0)

하이드 유감(有感)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리뷰

관객들이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볼 때 가장 살이 떨린다는 장면은 지킬이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부르며 내면의 하이드를 영접하는 순간이다. 나는 홍광호 주연의 지킬앤하이드를 봤는데 무르게(?) 생긴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성량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뜨악’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홍광호가 노래를 워낙 잘했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는 말처럼 그의 선한 얼굴과 엇갈리는 잔혹 연기와의 극상승 효과도 한몫 했을 것이다.

악인 역할을 잘하기란 어렵다. 특히 캐릭터가 선악의 양면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선과 악 사이를 널뛰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전체적으로 홍광호의 연기는 준수했지만 악당치고는 좀 신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사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본 조커의 연기에 하도 치를 떨었던 기억 때문인지 엔간한 악역은 시야에 잡히지 않게 되더라.

지킬앤하이드는 선악의 캐릭터를 종횡무진하기에 조커같은 일직선상 악인과 비교하는 것이 온당치 않음은 잘 알고 있다. 더구나 나쁜 캐릭터여도 관객들이 조커에게는 서늘함을, 지킬에게는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 차이가 사회성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었다.

둘다 살인을 저지르지만 정체도 불명하고 자발적 무직자인 조커는 절대로 사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이 뭔가 공감하거나 이해해줄만한 자락이 거의 없고 오히려 내 주변에 저런 인간이 있을까봐 몸서리치게 된다. 반면 지킬은 번듯한 직업에 신분도 좋고 유망한 청년인데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졌기에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귀환할 거라고 믿을 것이다(믿고 싶을 것이다). 또한 의사라는, 남들이 선망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약자를 위해 자신의 평안함을 내던지는 이타심은 만고불변의 감동 스토리 아닌가. 하지만 사회성을 극단으로 가르는 근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같은 사회에 살지만 그 사회 안에서 변혁을 꿈꾸는 지킬과 사회 자체를 조롱하며 파괴하는 하이드의 차이는 그토록 극명한 것일까? 단순히 그것을 선악의 상반된 모습이라고 하기엔 뭔가 허전하다. ‘선악’. 이것은 지킬앤하이드의 주제인데,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이슈는 인류사의 오랜 토론거리였다.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은 아직도 샅바씨름 중이며 서양은 기독교가 생기면서 구원과 회개라는 종교 논리로 선악 문제를 다루었다. 답은 뭘까.

흔히 인간의 본성에는 선악이 함께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본성이 있다는 가정을 기정사실화한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냐고 따지기 전에 인간에게 본성이라는 게 있느냐고 먼저 자문해야 되지 않을까? 설령 인간에게 본성이 있다고 한들 우리는 인간본성에 선악이 있다는 개념을 너무 쉽게 승낙한건 아닐까.

나는 하이드에게 심히 유감(有感)스럽다. 그것은 지킬이 거악으로 물들어가는 이유가 개인의 의지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2006년 지킬앤하이드를 봤을 때 나는 ‘악’의 근원이 사회구조의 문제와 샴쌍둥이처럼 붙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그리고 ‘악은 평범하다’ 고 했던 한나 아렌트처럼 일상에서 피식 웃고 넘어가는 사소함에서 악이 잉태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킬앤하이드에 나오는 오만한 귀족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연일 파티와 진수성찬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주색잡기 무한경쟁을 벌인다. 가난한 사람들은 한끼 식사를 위해 도둑질을 하는 현실을 보고 서민들을 불결하고 더럽다고 욕한다. 그러나 뒤에서는 돈으로 육체를 사는 그들의 이중성은 순간 쾌락 정도로 치부된다. 바로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너무나 평범하기에 우리는 그 뒤에 숨어있는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패스해버린다. 그래서 악은 평범하다는 문구가 다시 각인된다.

뮤지컬의 원작인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태어나 19세기 후반까지 산 사람이다. 그가 살았던 시간은 영국이 대영제국이라 으스대며 세계패권을 잡았던 시대. 영국은 해가 질 틈이 없는 전세계에 걸친 거대한 영토와 자원, 언제든 착취할 수 있는 식민지의 저렴한 노동력과 막강한 군사력이 있었으니 뭔들 두려웠을까. 그러나 독점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계층 문제는 종양 수준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하루 15시 이상 중노동을 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범죄율도 상승했고 돈이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티븐슨이 목격한 영국의 현실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순둥이 같은 사람도 하이드로 돌변시킬 만큼 영국의 사회악은 거대했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은 지킬을 하이드로 변신시킨 원동력(?)이 바로 영국 사회의 모순, 즉 인류 공통의 문제임을 갈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킬 내면에 있는 악은 사회문제와 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지킬앤하이드에서 악과 사회의 연결성이 2006년에 비해 느슨해진 느낌이다. 공연은 영화와 달리 새로 무대에 오를 때마다 변한다. 배우와 각색이 바뀔 수도 있고 스토리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은 한번 만들고 ‘땡’인 영화와 달리 트렌드를 즉각 반영할 수 있는 공연의 장점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는 찬찬히 그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되감아보았다. 신자유주의 바람이 이념이 아닌 정책으로 현실에서 각개전투로 다가왔다.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고 개인채무가 급증하며 중산층이 엷어졌다. 실업율은 높고 성공신화가 찬양되며 너도나도 부자가 되려고 기를 쓴다. 삶의 불안 심리도 당연 커졌지만 국가의 처방전은 ‘성공하세요, 부자되세요, 아껴쓰세요’ 정도랄까. 그래, 사회는 점점 개인 책임의 비중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체질개선을 했구나.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2006년 하이드가 살인을 할 때마다 그것이 사회모순에 대한 절규로 느꼈는데 2008년에는 개인의 복수심이라는 감정이 적잖은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사회의 영향으로 선해지거나 악해지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자 책임이라는 의미인가. 똑같은 현실을 목격했어도 다른 의사들은 무도회에 가지만 지킬이 연구실로 향한 것도 결국 개인 선택의 문제로 보라는 것일까.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개인이고 사회의 책임은 무성한 입담과 소문으로 사그라지는 게 현실이라고 조롱한 건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을 꽤나 심각하게 봤지만 작품성은 여전히 찬란하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빼어나다. 에이스 오브 에이스인 류정한은 여전히 광채난다고 난리법석, 새로 진입한 홍광호는 황태자로 신분상승한 느낌이며, 김우형은 기존의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래서 세 배우의 작품을 다 보고 싶은, 여전히 강추를 받을만하고 공연이 끝나고 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치고 싶은 작품이다.

흠집을 좀 들추자면 스토리가 전체적으로 촘촘하지 않아 다소 지루했고, 특히 1막에서 루시의 카바레씬 비중은 과잉이었다. 연출자가 왜 저렇게 구성했을까 하는 속삭임이 들렸는데, 브레히트가 ‘나이를 먹을수록 간결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연륜이 쌓이면 경험도 많아지고 세상사의 다채로운 일에 노출된다. 왠만한 일은 다 겪어보고 들어봤기에 구구절절 그것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 공연도 마찬가지일까. 사람으로 치면 지킬앤하이드도 공연물로는 많이 성장한 편이다. 이제 관객들도 알만큼 아니까 스토리에서 곁가지라고 판단한 부분을 잘라내고 새롭거나 필요하다고 여긴 것을 접붙이기했다. 그게 오바가 아니었을까. 아직 우리에게는 이야기의 점프보다는 세밀한 전개가 더 요원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것을 다 안다고 해도 다시 한번 짚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선악이라는 주제는 간명하다. 속 깊게 들어가면 머리 아프겠지만 원론 수준에서 지킬앤하이드처럼 멋진 작품으로 버무릴 수 있다. 그 압권은 2막에서 지킬과 하이드의 초 간격 변신 씬이다. 나는 홍광호의 변신연기를 몰입하며 보다 과연 현실에서 선과 악이 저렇게 선연하게 구분될까라는 의혹이 스쳐갔다. 현실에서 선악을 자로 정교하게 잴 수 있는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걸 잊게 만든 홍광호의 연기와 지킬앤하이드가 두려웠다. 또한 서로 다른 자아의 충돌 연기가 끝났을 때 박수경쟁에 동참한 나를 보며 떨리기도 했다.

선과 악처럼 내게 두려움과 열광이라는 상이한 감정을 공존하게 만든 것은 지킬앤하이드의 흡입력 때문일까. 아니면 나도 역시 선과 악 같은 이중자아가 내재해있는 탓인가. 그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Written by Cloud

 

 

 

 

 

 

 

 

by cloudplanet | 2009/01/21 17:06 | Cloud + Musical | 트랙백 | 덧글(0)

촛불을 요격(邀擊)의 정의로 승화시켜라

순서

1. 미네르바를 밝은 낮에 출현시켜라

2. 처절했던 이종격투기 연가(戀歌)

3. 거리를 장악하면 정권이 바뀐다

4. 촛불의 올가미를 벗겨라

5. 촛불의 비하인드 메시지

6. 다수(多數)가 현자(賢者)를 죽였다

7. 투표는 쪽수가 아니다

8. 다수의 횡포를 삭제시켜라

9. 소크라테스의 누명

10. 소크라테스의 빗겨간 애정

11. 악은 악이요, 법은 법이다

12. 폭력의 밝은 면을 들추어라

13. 저항폭력은 인류의 초역사적 권리

14. 촛불이 햇불로, 햇불을 요격으로

15. 공공의 적을 단죄하라

16. 요격(邀擊)의 정의를 부활시켜라

* 뱀꼬랑지 하나 - 생활의 죄인 이명박

 

1. 미네르바를 밝은 낮에 출현시켜라

불길한 예상대로 미네르바가 구속됐습니다. 그래도 기본 머리가 있는 사람들인데 바보짓은 안할 거라고 속단(?)했는데 한방 먹은 느낌입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저들은 우리와 뇌구조가 상당히 다르거나 아니면 DNA 염기 서열 배치가 태생적으로 판이하게 뒤틀려있는지도 모릅니다.

박대성씨가 진짜 미네르바인지 논란이지만 정작 중요한 사안은 MB 정부가 시민사회에 가하는 폭력이 기본권 침해를 넘어 목죄기 직전에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터넷과 시민사회가 뜨겁게 반발하고 있으며 또다른 형태의 저항이 예상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는 시작에 불과하고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며 더 큰 사안들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8년 연말을 뒤숭숭하게 했던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도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이며 발목 지뢰들이 곳곳에 널린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기간 저항이 아닌 장기 플랜으로 억압에 맞서야 됩니다. 미네르바가 활동했던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리고 새벽뿐만 아니라 밝은 현실의 대낮에도 기운차게 기지개 펼 수 있어야겠죠.

그 출발점은 어디에서 그리고 우리의 저항 컨셉트(?)는 무엇으로 설정해야 될까요? 저는 2008년 촛불 집회와 2008 연말 국회에서 벌어진 한나라당의 테이크다운 시도와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2. 처절했던 이종격투기 연가(戀歌)

2008년 연말, 모처럼 민주당이 견제구 제대로 던졌었죠.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묻지마 베이스러닝에 견제 동작 뻔히 보이는 견제구만 남발하거나 보크를 범했던 민주당이 간만에 정신차렸습니다. 그간 민주당은 '모여라 꿈동산' 을 합창해도 힘든 시기에 내부에서는 계파 싸움하느라 한나라당의 독주에 얼음땡 놀이로 방관했는데, 국회 본회의당 점거를 통해 한때 잊었던 학생운동 시절의 야수(?) 본능을 각성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2008년 연말에 밀어붙였던 미디어법 개정안은 같은 당 김형오 국회의장마저 브레이크 걸 정도로 문제소지가 많고 합리적인 절차를 무시한 처사였기에 생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당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예상보다 강력한 저항을 통해 한나라당이 탐욕스럽게 추진한 미디어법과 다른 법안들에 일시정지 모드를 걸었지만 잠금장치 상태가 오래가기는 힘들 것입니다. 한라당과 보수세력은 다시 온갖 야비한 방법과 음모를 꾸밀 것이고 윤활유를 뿌려 냉동상태를 해체시키려 하겠죠.

2008년 말에 상정한 한나라당의 법안들은 향후 한국의 시민사회와 사회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중차대한 사안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를 어떻게 막고 올바른 합의안을 끌어내는 일이 중요하겠지만 보다 시급한 것은 MB와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정체가 무엇인지 완연히 깨닫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 새로운 컨셉과 방식으로 저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5년 임기의 MB에게 계속 마운트 포지션을 허용하며 파운딩을 당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광속랜 스피드로 만든 소위 '미디어 개정법'과 이후에 벌어진 제 2 롯데월드 허용, 미네르바 구속 등 일련의 시추에이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미 MB 집권 이후로 우리는 지겹도록 기득권 위주의 정책과 반대세력 억압,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을 목격했습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2008년 연말부터 2009년 연초 사이에 보여준 한나라당의 행보와 조중동(이제는 KBS까지) 및 보수세력의 지원사격은 대놓고 시민사회를 진압하겠다는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저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본색을 무자비하게 커밍아웃했죠. 양성애자나 동성애자들이 편견과 차별에 맞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은 저항을 통해 펼치기 힘든 아름다움을 이루겠다는 비장함이라도 있지만, 지금 MB와 한나라당이 보여주는 꼴통 커밍아웃은 '내 배만 따스하면 되니까 다들 삽자루 들고 따라오고 싫으면 불도저로 밀어버리겠다' 는 배째라식 막장 커밍아웃입니다. 그마나 목욕도 안하고 탐욕스런 배는 불러 터져서 어디에 때가 끼고 더러운지도 몰라 악취로 범벅된 오만불결 저열함의 극치입니다.

잠시나마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하는 시늉을 몇 차례 보였지만, 그것은 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세우고 방탄 갑옷을 장착할 시간벌이용 저질 퍼포먼스였죠. 이제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는 만빵 충전된 오만함과 법과 공권력이라는, 합법화된 폭력이라는 미명으로 반대세력 소탕 작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MB를 필두로 한나라당 돌격대와 수구세력들의 저돌성은 집요하며 치졸할 정도로 일직선상 슈팅을 고집하는데, 그 정점은 국회를 이종격투기장으로 만들고 2009년 새해부터 한국사회를 들끓게 한 미디어법 통과 시도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비우호적인 언론을 잠재우려고 YTN과 KBS를 평탄(平坦)화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마지막 남은 보루인 MBC와 공영방송 체제를 함몰시키려는 필살모드를 발동시켰습니다. 한나라당이 상정한 쟁점법안들, 특히 미디어 관련법의 핵심은 보수세력과 기득권층에게 터보엔진을 무상임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비판할 세력이 원천봉쇄되면 여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또한 잘못을 저질러도 쉽게 이슈화되지 못하기에 온갖 비리와 부패가 다양한 형태로 사회 구석구석을 전염시키겠죠.

 

3. 거리를 장악하면 정권이 바뀐다

미디어법과 이러한 법안과 비슷한 향후의 정책이 원안대로(또는 원안에 가깝게) 통과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또한 MB 정부가 지겹게 암송하는 효율과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로의 전환은 누구에게 이득일까요? 대다수 힘없는 일반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것은 MB와 한나라당이 대변하는 보수 및 시장친화 세력들이 추구하는 흐름이 강자(强者)와 지배세력을 더욱 강고(强固)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경쟁이 아닌 기존 기득권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공정한 환경을 강화시켜 태생적으로 자유경쟁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현재 한국사회는 양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어 분배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회의 미드필더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으며 갈수록 서민들이 힘든 삶을 살아야 되는 사회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는 상대방 골문에 골을 넣기까지 거쳐야 되는 패스가 중간에서 단절되어, 서민들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자기편 골대 라인에서 상대편 진영으로 일명 '뻥축구' 를 남발하다가 제풀에 쓰러지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사회구조가 비효율적이니 결과가 좋을 수 없고 또한 성공한다고 한들 소모적이며 과다 출혈 경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은 미미하고 그 해악과 손해는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게 커다란 짐이 됩니다.

그래서 비뚤어진 사회구조를 개선해야 되는데 MB와 한나라당의 정책 방향과 마인드는 시대에 어긋나는 정도가 아니라 하수구를 역류시켜 정화 불가능하게 오염시키는 '하수구 두뇌와 하수구 권력' 의 엽기모델을 보여줄 뿐입니다. 서민들이 도약하거나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은 점점 초라해지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난 집의 계층과 부에 따라 남아있는 삶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흔히 부의 대물림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불리는 현상이 일상다반사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의 이러한 시도에 시민들은 온몸으로 맞서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 바로 우리 같은 서민들의 삶에 머지않아 막중한 영향을 미치게 될 문제에 왜 다들 소극적이었을까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개정 시도에 MBC와 언론노조를 비롯한 여러 사회단체들이 이에 항의하고 연대하고 있지만 정작 일반 시민들의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망설였던 걸까요? 연말연시에는 조용히 수신(修身)해야 된다는 분위기? 아니면 추운 날씨 탓으로 돌려야 될까요? 어쩌면 2008년 촛불 집회의 결과를 보면서 우리들이 나서본들 정작 바뀌는 게 없을 거라는 냉소적인 인식이 퍼진 영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MB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수구보수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일반 시민들의 거리 출격(出擊)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시민들이 거리를 장악했을 때 부패하고 부정한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입니다.

 

4. 촛불의 올가미를 벗겨라

몇몇 언론은 한나라당의 법안 강행이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서 제 2의 촛불 집회로 점화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합니다. 한나라당도 쇠고기 파동 때 크게 데인 경험이 있기에 촛불이 다시 타오르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과 지배층이 무너지는 도화선은 일반 시민들이 거리로 나올 때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도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크자 은근슬쩍 눈치를 보면서 타협의 가능성을 찔끔찔끔 흘렸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법안 처리를 늦추기는 했지만 어떤 과정이나 형태로든 한나라당은 다시 돌격할 것입니다. 이후 MB와 한나라당의 동향을 보면 시민사회의 저항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그 이유를 나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쇠고기 파동과 달리 미디어 관련 개악법은 직접적으로 지금 당장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파급력은 무시무시하지만 사람들은 먼 미래보다는 오늘 아침 밥상 앞의 젓가락 움직임에 더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민들의 동참과 연대가 쇠고기 파동 때와 달리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둘째, 계절적인 요인. 2008년 촛불 집회에서 봤듯이 비가 오거나 날이 너무 더우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지금 날이 추운 겨울이다 보니 아무래도 여름에 비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고, 그래서 한나라당도 날이 풀리기 전에 큰 사안들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겠죠.

셋째, 가장 큰 이유라고 보는데 실제로 제 2의 촛불이 일어나더라도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작년 촛불 정국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를 떠올려 봅시다. 촛불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폭력 시위로 변했다는 반발과 사람들도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는 아쉬운 자족감, 국가경제에 해롭고 대외신용도마저 하락해서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불안감, 친북좌파세력의 호도라는 이념 논쟁 등이 맞물리면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마땅찮은 결말로 끝났습니다.

청와대까지 진격하겠다는 시민들의 호기는 매번 전경과 경찰들의 방어에 막혔고 그러다보니 시민과 경찰들의 물리적 충돌이 잦아지면서 부상자도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촛불 집회의 원래 목적이 변질됐다는 여론이 부각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또한 당시 촛불 집회 지도부도 촛불 집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고 진행시킬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촛불 집회에 몇 차례 참여했는데 매번 비슷한 동선으로 시민들이 이동했고(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주요 진입로에 경찰과 전경들의 방어선을 뚫으려는 움직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바리케이드와 철사로 꽁꽁 묶은 전경차로 좁은 통로를 막은 전경들에게 시민들이 행사할 있는 물리적인 수단은 전경차를 끌어내거나 앞선에 있는 전경들을 어쩌다(?) 한명씩 끌어내는 정도였습니다. 이마저도 많은 시민들이 '폭력은 안돼!' 라고 소리치며 적극적으로 말릴 정도였습니다. 즉, 시민들이 다시 촛불 집회에 참여한다 하더라고 그 끝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상 시나리오를 그려볼까요? 다시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에서 시민들이 집회를 하더라도 MB와 한나라당이 석고대죄하며 일벌백계 털갈이(?)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2008년에 충분히 경험했듯이 애매한 사과 발언 몇 번 하다가 시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멋대로 행동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들은 말로 해서는 통하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청와대로 가서 MB와 담판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청와대로 가는 길목은 막힐 것이고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저지선을 뚫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보면 사람들은 지치게 되고 그러다 돌발 상황이나 다소 폭력적인 일이라도 생기면 조중동(KBS도)은 '바로 요거야!' 하면서 그걸 헤드라인에 박아놓고 반감 분위기를 부추기려 할 것입니다. 또다시 실망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하자는 의견이 상승하면서 다시 시들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예측하는 시민 사회의 저항 과정이 아닐까요? 저 또한 시민사회가 혁신적인 인식의 전환을 하지 못하면 어떠한 형태로 집회나 시위를 하더라고 큰 성과를 얻기 힘들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촛불의 한계가 아니라 그간 한국 사회가 경험했던 여러 형태의 집회와 시위 가운데에서, 특히 2008년의 촛불이 내포한 가장 내밀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아직 우리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촛불을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소통과 저항의 표출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곧 전 인류가 잊고 있었던 원초적인 정의감각과 정의실현을 각성시킬 무한하고 장엄한 초시대적인 흐름으로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5. 촛불의 비하인드 메시지

MB 정부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고시 강행 이후 벌어졌던 시민사회의 저항과 촛불 집회가 확산될 때 이를 극상승시키기 어려웠던 몇 가지 올가미(?)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리. 촛불 집회에서 많이 나왔던 구호 가운데 하나는 'MB 탄압', 'MB는 물러가라' 였습니다. 그런데 MB는 17대 대선에서 48.7%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입니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든 다수가 선택한 지도자를 다시 자신의 손으로 부정해야 된다는 난센스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촛불 집회가 가열되었을 때에도 MB가 물러나거나 탄핵시켜야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견이 많았습니다.

싫든좋든 우리 손으로(자신이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뽑았기에 5년 임기 동안에는 다수의 선택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고, 그래서 촛불 집회가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성격으로 유연하게 전환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배후세력을 거론하며 폄훼했을 때에도 촛불 집회가 자칫 정권교체 투쟁으로 비쳐져서 원래의 순수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시민사회의 발목을 잡았던 것입니다.

둘째, 법 준수의 문제. 현행법의 글자만 놓고 따진다면 촛불 집회는 다수의 범법자를 양산했습니다. 보수세력과 경찰, MB 정부도 법치를 강조하며 촛불 집회를 불법 시위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촛불 집회가 일어났던 시기 동안 조중동과 보수세력은 끊임없이 법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법=시민사회의 약속=준수(遵守)' 라는 공식을 각인시키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당시 촛불 지도부는 현행법의 무리한 적용에 대해 ‘누가 먼저 법을 어겼나’, ‘악법은 법이 아니다’ 라는 논리로 대응했습니다. 그러나 촛불 지도부도 법치주의를 깬다는 비난과 위험성을 온전히 떠안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것이 더 적극적인 행동과 결단으로 나가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셋째, 폭력 사용의 문제. 촛불 집회가 절정에 이른 6월 10일 이전 시민과 경찰의 물리적 대립이 잦아졌습니다. 저도 6월초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때 새문안 교회와 구세군 건물 사이의 진입로에서 격렬한 충돌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전경차로 출입로를 단단히 막고 좁은 틈을 전경들이 방패를 높이 세우고 빽빽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 사람들이 앞선에서 모래와 물을 뿌리며 돌파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는데 버티다 지친 전경들이 몇 차례 시민들에게 끌려나왔습니다. 이때마다 시민들이 주변으로 모여들며 '폭력은 안돼!' 라고 소리쳤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전경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쓸까봐 염려하며 마지막까지 비폭력 정신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외침이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저는 시민들의 눈물겨운 자제력을 보며 가슴이 저미였는데 과연 저러한 마음을 MB와 정부가 얼마나 헤아려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역시나 다음날 조중동은 촛불 집회가 폭력성을 부각시키며 촛불 집회의 부당성을 확대시키려 했습니다. 이러한 여론 때문에 시민들도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폭력이 있기 마련이며 정당방위 같은 행위들이 이러한 사례에 속합니다. 과연 촛불 집회 과정에서 시민들이 행사했던 물리력이 정말로 참담한(?) 수준의 폭력이었을까요? 왜 폭력을 써야했는지 그리고 그 폭력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필요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깊은 성찰 없이 ‘폭력=악’ 이라는 도식으로 받아들인 게 아닐까요?

위에서 제기됐던 3가지 사안,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 법치주의, 비폭력은 민주주의 체제(또는 지향하는)를 가진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통용되는 원칙입니다. 우리도 이를 당연시 여기고 있는데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이러한 원칙과 이데올로기가 나온 배경을 알게 되면 ‘뭥미?’ 하며 뜨악할지도 모릅니다. 촛불은 바로 이러한 원칙들을 시대변화에 따라 수술(?)해야 된다고 일깨워준 촉매제가 아닐까요?

 

6. 다수(多數)가 현자(賢者)를 죽였다

민주주의 제도가 탄생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 BC 399년 그곳에서 소크라테스는 신에게 불경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고, 저 유명한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됩니다. 당시 이 재판에는 일반 시민 가운데 제비뽑기로 추첨된 501명의 시민들이 재판관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유죄 여부를 묻는 첫 번째 표결은 280 대 221(55.9% 가 찬성), 단 30표 차이로 소크라테스는 유죄로 인정됩니다. 이어진 형량에 대한 표결에서 360 대 140으로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후세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 재판은 수많은 리뷰(?)를 남깁니다. ‘악법도 법이다’ 라는 모순된 원칙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동시에 위대한 철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잘못된 재판의 전형으로 꼽기도 합니다. 또한 민주주의 제도의 헛점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힙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중의정치라고 봤습니다. 당시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면서 국론이 분열되었고 반대파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대중을 선동해서 자기편에게 유리한 정치를 만드는 일종의 포퓰리즘이 득세했습니다.

한때 정치에 뜻을 품은 플라톤은 스승의 억울한 죽음을 보면서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한 자기 조국과 민주주의 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세계에 등을 돌렸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귀족 정치를 최상의 정치체제로 주장하며 철인정치론을 내세우게 됩니다. 이는 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부분이며 저도 귀족정치를 주장한 플라톤을 아주 보수적인 철학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주장한 귀족정치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귀한 가문의) 귀족들이 주도하는 정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스승을 죽게 만든 우매한 시민들과 그들이 선택한 다수결 원칙의 맹점을 온몸으로 경험했기에 제대로 교육받고 정신과 육체가 균형있게 발달한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철인정치론이며 귀족은 바로 그러한 능력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귀족이라는 용어의 뉘앙스에 좌우되어 플라톤의 사상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 플라톤은 그 누구보다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를 통찰했었죠(월 듀란트가 쓴 <철학 이야기>를 보면 플라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과 분노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고민이 2500년 전에만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 정치가 인류사에 재등장하게 된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 이후에도 본질적인 문제는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모든 사람에게 1인 1표를 주고 투표를 통한 다수결원리가 싹트기 시작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삼부회로 올라갑니다. 원래 삼부회는 1302년 필리프 4세가 만든 사제·귀족·도시 대표로 구성된 협의체였고 이때 삼부회의 구성은 제1부 사제, 제2부 귀족, 제3부 평민 대표들로 구성된 국민의회였습니다.

17세기 초에 삼부회가 소집된 이후 1789년 프랑스에서 170여년 만에 삼부회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것은 평민계층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반영하며 당시 사제와 귀족계층은 삼부회를 통해 평민계층을 다시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려 합니다. 그런데 삼부회의 운영과 투표방식 때문에 의견차가 커지게 됩니다. 사제와 귀족계층은 각부에게 동일한 표결권을 주는 투표방식을 제시하는데 제 3부인 평민대표가 이를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제 1부와 제 2부는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에 투표를 하게 되면 항상 2:1의 비율로 제 3부인 평민계층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인구의 약 90% 해당하는 평민계층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의사결정방식이었고, 이후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평민 계층의 의사를 반영하는 ‘1인 1표’ 라는 인식이 확산됩니다.

‘다수결원리’ 가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으로 알고 있지만, 그 유래를 따져보면 당시에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질(質)의 문제보다는 애당초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었기에 선택의 대상을 확대시켜야 되는 양(量)의 확산 문제가 더 절실했습니다. 즉 다수결원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유지시켜야했던 이유는 일반시민인 평민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에 반영시켜서 특정 신분층의 특권과 횡포를 막아야했던 역사적인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인 1표제’ 기반으로 한 다수결원리가 정착된 이후 시간이 갈수록 특히 현대사회에 오면서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7. 투표는 쪽수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투표가 다수결원리로만 결정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투표권 질(質)의 문제.

생각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선택에 동일한 가중치를 줘야 되는가? 우리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 등 중요한 공직자 선거나 국민투표를 할 때 모든 사람의 선택이 단순히 표 하나로 계산됩니다. 오랜 고민과 깊은 분석을 하고 선택한 사람이나 개념 없는 - 같은 고향이나 학교, 종교, 문중 사람이어서 또는 돈을 받았으니까 뽑는다는 식의 - 사람의 선택도 동등한 결과로 처리됩니다. 

따라서 개념상실자들이 많을수록 한 사람의 실수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게 됩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촛불 집회에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우매한 어른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우리까지 죽게 생겼습니다’ 라고 했던 어느 중3 학생의 절규가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격하게 얘기하면 다수결 원리의 맹점은 멍청한 다수의 선택 때문에 오히려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과 후세들이 그 피해와 부담을 떠안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투표율이 점점 낮아져서, 특히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처럼 투표율이 15%대에 그쳐 대의성 자체를 인정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17대 대통령선거 투표율도 63%에 불과했고 이는 투표권 자체가 소중했던 시민사회 형성기의 가치였던 다수결원리의 쇠퇴를 뜻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수결원리가 현실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다락방에 청약신청을 한 것과 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투표권 양의 논리는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며 우리는 질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될 시대에 거주하게 된 것이죠.

둘째, 투표권 양(量)의 확산.

위에서 언급한 투표의 질(質)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힘든 과제입니다. 현실적으로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유로 선택을 했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깨어있는 새로운 세력(?)에게 투표권을 주어 투표권의 질 문제를 보완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만 18~20세 사이의 연령부터 투표권이 주어집니다. 이는 의무교육(한국 기준)을 마치거나 그에 준하는 사회생활을 겪은 연령대의 사람이 투표권을 행사할 사회적 수준이 된다는 개념인데 그 바탕은 산업사회 시대의 유물입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가가 주도하는 의무교육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쌓아 갔습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향식 전달 교육만이 이뤄졌고 사람들도 공교육을 통해서 지식과 사회적응에 필요한 소양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울부짖는(?) ‘지식정보화 사회’입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이 학교교육을 통해서만 얻어지지 않으며 기성세대가 지식과 정보의 기득권을 갖기 힘든 구조입니다. IT혁명으로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지식의 중심이 가상공간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과 가상공간에 익숙한 나이어린 학생들이 기성세대를 능가하는 정보습득 능력을 과시하며 지식의 상향평준화 사회로 진화 중입니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이라는 미네르바가 독학으로 경제전문가 수준에 갔다고 하는데 진위여부를 떠나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미네르바처럼 학력과 전공에 억눌리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이 배출될 것입니다.

2008년 소고기 파동 때도 기성세대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정보와 지식, 논리에서 난타당하는 괴변(?)이 속출했던 것도 이런 변화 때문입니다. 거기다 인터넷에서는 지식의 세대간 역전현상이 벌어져서 기성세대가 청소년세대에게 가르침을 받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2008년 촛불 집회에 숨어있던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의 세대간 역전 현상이 한국 사회를 시발로 전 세계로 파급되는 새시대의 출현입니다.

덧붙여 2008년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중고등 학생들을 보며 ‘얘들이 뭘 알겠냐’ 며 냉소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시대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일차적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은 과학이나 전문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상식과 소통의 문제였습니다. 안전하고 질좋은 식품의 수입과 유통을 국가가 어떻게 보장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를 투명하게 알려달라는 요구였고 어린 학생들도 기초 지식만 알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수많은 지식들이 있기에 학생들도 클릭질 몇 번이면 전문가 못지않게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학생들이 여론 형성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 참여 연령을 낮추거나 또는 현행 제도상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크게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그들의 목소리와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투표제도를 고려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교육감 선거의 경우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없는데 이는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본질적인 결함입니다. 지식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게 신진세력에게 사회적 합의의 장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됩니다.

셋째, 다수결 원리에서 다변화(多變化) 원리로

앞서 얘기했듯이 세계는 지식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변화 중이며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한국은 이미 지식정보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개인이나 조직 그리고 사회가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경쟁에서 퇴보는 필수며 퇴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에만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며 정치권에도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 너무나 급속히 변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즉 올바른 문제해결능력이 없으면 사회와 공동체에 커다란 피해가 오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인성 검사나 직무 적성 시험을 보는데 앞으로도 대학이나 다른 분야에도 이러한 시험이 확대될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이름의 시험이 있었지만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이것이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되리라 예상합니다.

우리는 인성 검사라고 하면 개인의 성격이 좋고나쁨을 판단하는 시험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인성 검사나 직무 적성 시험에서 판단하려는 가장 큰 요소는 ‘편견(偏見)’이 될 것입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하루에도 빗발치듯 생산됩니다. 그래서 지식의 수명이 극히 짧아졌고 고등교육으로 여겨졌던 대학에서 아무리 잘 배웠어도 사회에 나오면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 경우가 많아 필수적으로 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를 인식했고 그래서 신입사원이나 기존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고 재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사회의 인재는 학력이나 자격증이 아닌 새로운 정보를 빨리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응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편견이 심한 사람이나 조직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꾸 튕겨내게 됩니다. 스펀지처럼 수많은 지식들을 흡수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거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편견이 심하지 없고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과 조직일수록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예상치 못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이 커지게 됩니다. 대학이나 기업도 인재를 보는 기준이 현재 갖고 있는 능력이나 지식보다는 앞으로 새로운 지식을 학습할 수 있는 기초 소양을 먼저 봅니다. 인성 검사가 중요해진 것도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편견이 없어야 지식 흡수력이 높다는 상관관계를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성공한다' 는 말도 지식정보화 사회의 성격을 은근하게 드러낸 표현입니다.

그리고 지식의 수명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변화가 가속화되었음을 뜻합니다. 한때 유일한 초강대국이라며 어깨에 잔뜩 뽕을 넣었던 미국이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잘못된 판단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막대한 군비를 낭비하더니 2008년 말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하반신 마비 증상에 걸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과 부로 영원할 것 같던 미국도 무능한 지도자의 연타석 병살타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 정도면 다른 나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8. 다수의 횡포를 삭제시켜라

따라서 한번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이 되었다고 남은 임기 동안 마음대로 한다? 다수결 원칙으로 뽑혔다고 임기를 보장해야 된다는 논리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통하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도 국정운영과 정책 실행에 있어 무능함을 보이면 공동체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며 그 파고가 산업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수결 원칙과 다수의 횡포' 는 엄연히 다릅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소통을 안하면서 MB와 한나라당이 자꾸 국회 다수당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조폭들이 몸살 불리고 쪽수 늘려서 가다 세우는 모습과 오버랩 됩니다.

거기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MB의 최대공약이 대운하 건설이었기 때문에 ‘대통령 당선=최대공약 실행’ 이라는 허접한 산업시대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나온 지식과 정보를 점심에 바겐세일하는 지식정보화 사회입니다. 사회도 광속으로 변화하며 지식의 유통기한도 무척 짧기에 미래사회의 변화 또한 급변하며 이제껏 인류가 겪지 못한 형태의 문제해결능력을 요구하게 됩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아차 하는 순간에 초강대국에서 진상대국으로 다운그레이드 될 수 있는 게 지식정보화 사회입니다.

그런데 MB와 한나라당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할 기본적인 학습능력도 부족하거니와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소통 없이 밀어붙이려고만 하니 한국 사회가 혼란스럽고 퇴보하는 것입니다. 특히 MB는 틈만 나면 경쟁을 강조하는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제대로 된 경쟁을 하려면 편견 없는 지식 습득이 선행해야 됨을 모르는 걸까요? MB 자신이 사막의 모래구덩이에 얼굴 파묻은 타조처럼 편견의 웅덩이에서 날밤 찜질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기주도학습능력이 나올 리 없습니다. 당연히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인재를 고르는 안목도 떨어지니 'Best of Best(in minor league)' 만 생기겠죠.

그래서 다변화(多變化)를 고려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지도자와 지도층은 빨리 증발시켜야 됩니다. 즉 다수결원칙으로 선택되었어도 당선 이후에는 다수결 원리가 아닌 다변화(多變化) 원리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제 뽑은 지도자가 내일부터는 현실에 맞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시대 흐름이 빠르며 설령 뛰어난 지도자라 하더라도 그가 펼치는 정책이 항상 옳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일이 바로 새로운 지식과 변화를 감지하는 스타트라인이 되며 이에 부응하지 않는 정책이 좋을 수 있을까요?

요즘 TV 일일 드라마 내용이 시청자의 의견을 받아들여 종횡으로 바뀔 때가 많습니다. 원래 멀쩡한 캐릭터로 설정됐던 인물이 갑자기 죽게 되거나 스토리 자체가 환골탈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청률에 과한 반응을 보여 이야기를 바꾸다보면 드라마가 달나라로 갈 수도 있지만 이는 쌍방향시대에 외부와의 소통이 그만큼 절실하며 숙명적인 의무임을 보여줍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와 시장을 반응을 파악하고 미리 예측하려고 소비자 체험단이나 소비자 모니터링이 필수과정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왜 정치에서만 시민사회와의 소통 과정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고, 특히 MB 정부는 시민들의 소리를 배후세력으로 몰아가며 억압하려는 것일까요?

MB나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어떤 정치지도자나 정당도 다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앞으로 MB 정부가 지금과 같은 마인드로 국정을 운영한다면 절대 좌시해서는 안됩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속성과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서 시대흐름에 거스르는 지도자와 정권에 대해서는 인증을 거부해야 됩니다. 즉 다변화를 정권삭제(?) 운동의 정밀한 대응논리로 제시할 때입니다.

2008년 촛불 집회에서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대흐름을 반영한 논리가 부족한 상태에서 곧바로 정치투쟁으로 도약하려 했기에 한계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현행법상 대통령 탄핵은 국회에서 가능한데 현재 한나라당이 과반수 이상 점유한 상태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반대로 과반석 이상을 가진 정당이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흉기로 악용할 수 있음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알 수 있습니다.

촛불이 남긴 또다른 비하인드 메시지에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시민사회가 정치권과 지배층을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을 창조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습니다.

 

9. 소크라테스의 누명

우리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한 사람을 소크라테스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정말로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무수한 이론과 반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김주일 저)라는 책을 보면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서기 2세기 로마의 법률가 도미누스 울피아누스였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문구의 저작권자가 뒤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주일씨는 저작권 바꿔치기가 1930년대 경성제국대 오다카 도오모 교수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악법도 법이라' 라고 해석한 것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오다카 도모오가 이런 해석을 한 이유는 일본의 폭압적인 지배와 통치를 합리화시키려는 고도의 잔머리 발상 때문이었죠. 그런데 한국의 법학자들은 그의 해석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법도 법이다'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을 한국의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과 권위를 정당화시키는 방어기제로 활용했고 도덕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했다고 인용됩니다.

참고로 도미누스 울피아누스는 'dura lex, sed lex'(법이 지독해도, 그래도 법이다)라고 했으며 그 의미는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scripta est'(그것이 나쁜 것이긴 하지만,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입니다. 원뜻에서 어떻게 생뚱맞게 변절(?)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지배층은 듣보잡(?) 도미누스 울피아누스 보다는 철학계 All-time 셀레브레이티 소크라테스의 명성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겠죠. 소크라테스처럼 고명한 지성인도 악법을 따랐는데 일반 시민들도 당연히 악법에 굽신굽신 하라는 세뇌교육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의 저작이나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어봐도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한 구절은 없습니다.

2008년 촛불 집회에 등업(?)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정부와 경찰, 보수세력은 법치주의에 따른 법 준수(遵守)를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촛불 지도부와 시민사회는 '악법은 법이 아니다' 라는 논리로 대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맞지만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소극적이고 제한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악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 옳다 하더라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어떤 형태로든 혼란이 생기기에 기득권층이 사회 혼란의 책임을 떠넘기는 구실이 됩니다.

자, 우리의 기억을 2008년 촛불 집회 때로 리와인드 해봅시다. 시민들이 차도로 나와 행진하고 소리 높여 구호를 외쳤습니다. 하나로 단결됐다는 연대의식은 높아졌지만 교통이 통제되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불편하고 촛불 집회자의 함성 때문에 일하는데 지장이 있거나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상인들도 생깁니다. 집회 횟수가 증가할수록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불만이 그만큼 커지겠죠. 거기다 외국인들이 투자를 꺼려서 주가 떨어지고 국가신용도 떨어진다고 협박(?)하면 주자는 포수(지배층), 1루수(지배층 옹호세력-경찰/보수언론) 과 2루수(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 사이에서 협살당하는 블랙코미디에 빠집니다.

즉, 악법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논리 하나로는 야구에서 선행주자가 한 베이스 더 진루하는 것을 막는 것처럼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시 촛불 집회의 상황을 야구에 비유해보면 포수는 주자의 움직임을 간파(과장)해서 여기저기 떠벌리고 1루수는 1,2루 사이의 수비(다른 치안이나 사회 이슈)를 포기하고 주자를 1루에 묶기 위해 베이스에 착 달라붙고, 2루수도 불안해서 다른 지역의 수비(생업이나 연구)를 포기하고 2루에 묶여서 같은 편인 시민사회가 양분되어 서로의 발목을 잡는 상태로 악화됐었죠. 결과적으로 사회 곳곳에 전력누수가 생겨 공동체에 큰 손해를 끼쳤는데 어느 집단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을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미래 한국 시민사회에서 어떤 형태의 시위나 집회, 저항 또는 제 2의 촛불이 일어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기형적인 트라이앵글 구조를 깨지 못하면 또다시 2008년 촛불 집회처럼 원맨쇼 세레모니로 끝나게 되겠죠. 그래서 우리는 1루수가 자기 수비 위치를 지키고 2루수가 주자의 주루플레이를 막지 않는, 그것이 공동체에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서 인식을 전환시켜 줘야 합니다. 해결책은 어디 있을까요? 저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동양판 '악법도 법이다' 의 원조로 인식된 한비(韓非)에게 그 해법이 있다고 봅니다.

 

10. 소크라테스의 빗겨간 애정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이런 식으로 해석될만한(또는 오해나 곡해할만한) 주장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해석에 있기 보다는 그런 논리를 어디에 적용하느냐에 있는데 논란이 된 '악법도 법이다' 라는 문구는 분석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2500년 전 법이라는 개념이 있었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법치주의', '준법정신', '법치국가' 라는 용어에 익숙하며 법(법률)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된 정의(定義)를 갖고 있습니다. 고대에도 함무라비 법전 같은 형태의 법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시민사회의 동의를 거쳐서 만든 게 아닌, 즉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 법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지금의 법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 아테네는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도시국가 아테네에도 법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왕이 없었고 법은 시민들의 투표로 뽑힌 지도층이나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 만들어졌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와 비슷하게 법이 만들어졌지만 과연 소크라테스나 아테네 사람들이 현대와 같은 법 개념을 가졌을까요? 그리고 국가라는 개념은 근대 유럽에 와서야 생긴 것인데, 2500년 전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 '국가를 위해 악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된다'는 생각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둘째, 준법이 아닌 신의(信義)의 문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보면 부당한 재판을 받은, 그것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의 마음상태가 어찌 저리 태평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오히려 격렬하게 반발하고 온갖 저주와 욕설을 내뿜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성인(聖人)이라고 불린 사람이니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에는 현대의 준법(遵法)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텐데 소크라테스는 무슨 까닭으로 독배를 마셨을까요? 

자신에게 망명을 권하는 크리톤에게 진중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이를 거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은 얼핏 준법정신으로 읽히겠지만 그 바탕은 신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겠지만 당시 개인이 공동체에 품은 애정관계(?)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보다 더 진하고 뜨거웠던 감정으로 다가옵니다. 그에 딱 맞는 용어나 개념을 끄집어내기가 어려운데 저는 ‘신의(信義)’ 라는 단어가 소크라테스의 심정을 가장 가깝게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지금이 있기까지 보호하고 지식이나 물질 같은 각종 영양분을 제공한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즉 그것은 애국심이나 준법정신 따른 행동이 아닌 그간 자신이 공동체로부터 받은 신뢰와 사랑에 대해 상응하게 갚아야한다는 사고방식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크리톤과 대화하면서 ‘내가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영향을 받을까)’ 하는 우려를 여러 번 내비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후손들도 누릴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고 공동체와의 신의(약속)를 틀을 깰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셋째, 아테네의 부활에 대한 믿음

소크라테스의 결정을 얘기할 때 독배를 거부하고 망명을 했다면 그의 행동으로 인해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기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기에 지켰다고 말하고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당시 유명인사였고 그를 따르는 제자와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가 재판 결과에 굴복해서 망명을 했다면 사회적 파장은 꽤 컸을 겁니다. 그러면 요즘 말로 사법부의 권위가 흔들리며 다른 시민들도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일이 증가했겠죠. 이러한 상황을 소크라테스도 가장 걱정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당시 도시국가 아테네의 상황과 소크라테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가 독배를 마신 또다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BC 469 ~ BC 399 경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아테네의 최전성기였던 페리클레스(BC 495 ? ~ BC 429)의 통치와 이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해 아테네의 국운이 기울던 시기였습니다.

한때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잡고 호령하던 아테네, 그 화려했던 시기에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꼽힌 페리클레스가 병사하고 BC 404년 숙적이었던 스파르타와 치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지면서 아테네는 찬란한 빛을 잃어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영향력에 들어갔고 스파르타가 뒤에서 명령하는 30인 참주정이 세워져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선동정치가 득세하며 민주주의 제도가 퇴락하는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테네의 쇠퇴를 분명 가슴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아테네는 완전히 몰락한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후세의 우리들은 아테네가 되돌아 올 수 없는 골목으로 들어간 것을 알지만 당시의 아테네 사람들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을까요?

거대한 제국이었던 페르시아를 연달아 물리쳤고 지중해의 톱을 차지했던 저력과 해운 기술, 델로스동맹의 맹주로서 지중해 세계를 지휘했던 경험, 그리고 군사력만 앞세운 스파르타와는 달리 아테네는 오랜 세월 축적된 지성과 인프라가 있었습니다. 스파르타에 패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사회는 혼란했지만 다시 전력투구하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고 여겼겠죠. 특히 소크라테스는 지성에서 앞선 아테네가 근육질(?)만 앞세운 스파르타에게 계속 눌릴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언젠가는 아테네가 다시 옛 영광을 회복할거라 여겼겠죠. 그래서 당시 침체기에 있던 아테네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더 혼란스럽게 되는 걸 피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도, 그것이 잘못된 판결임을 알면서도 선선히 받아들인 것은 바로 자기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아테네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융합된 결과가 아닐까요?

 

11. 악은 악이요, 법은 법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사례를 동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던 법가 사상의 원조로 불리는 한비(韓非, BC 280?~BC 233)입니다. 그는 한(韓)나라의 왕족이었는데 당시 한나라는 국운이 쇠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한나라는 왕이 간신배에게 놀아나서 제대로 국정이 운영되지 못했고 당연히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권력있는 사람과 세력들의 입김에 좌우됐습니다.

한나라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죠. 지식인이었던 한비의 눈에는 나라의 암울한 미래가 매직아이처럼 보였을 것이고, 이를 바로 잡으려면 법을 엄격하게 실행해서 간신배들의 전횡(專橫)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비는 왕에게 여러 번 건의했지만 허사였고 결국 힘이 없었던 그는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도 정작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조국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것이 법가 사상이 나온 처절한 배경인데 후대에는 한비의 절규와 분노는 삭제된 채 ‘악법도 법이다’ 라는 논리로 그의 법가사상이 악용됩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소크라테스와 한비의 사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이유와 상황 때문에 법(규칙)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목적은 자기 조국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애뜻한 염원은 오히려 조국에 해를 끼쳤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수석제자였던 플라톤은 스승을 죽인 조국에 분노해서 등을 돌린 채 학문에만 몰두합니다. 그리고 플라톤의 제자들도 역시 아테네가 위급해졌을 때 현실에 참여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의 제자들 중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지만 풍전등화의 아테네를 구하는 데에 인색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억울한 죽음을 보았기에 자신들이 나서봤자 결국 헛발품이 될 거라 여겼던 탓일까요?

한비의 사상은 자기 조국에서 거부되고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시황의 진나라에서 채택됩니다. 자기 조국을 살리려했던 사상이 오히려 조국에 칼이 되어 돌아온 한비의 아이러니는 소크라테스와 절묘하게 겹쳐집니다. 스승은 조국을 위해 죽었는데 제자들은 조국이 망하고 있을 때 관광객으로 전향한 플라톤과 제자들의 아이러니와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요?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례에서 몇 가지 공리(公理)를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악법을 어기는 일이 현재 혼란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따르거나 묵과한다면 그것은 공동체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조국이 망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로 독배를 마시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망명을 해서 레지스탕스처럼 잘못된 법과 제도를 고치기 위해 싸우지 않았을까요? 그가 악법을 따랐다는 잘못된 선례가 오히려 후대의 사람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못하게 만든 이데올로기로 악용된 게 아닌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한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전에 법을 악용하는 세력들을 제거하는 게 먼저가 아니었을까요? 그도 자기의 사상이 진나라에서 흉기로 바뀌는 것을 알았다면 먼저 자기 조국에서 간악한 무리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소크라테스와 한비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대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를 알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됩니다.

앞으로 제 2의 촛불이 일어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도 2008년 촛불 집회처럼 실정법을 지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질 겁니다. 이때는 더 이상 소극적으로 ‘악법은 법이 아니다’ 라는 논리로만 대응해서는 안됩니다. 진정으로 자기 조국과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현재 혼란이 생기더라도 미래를 위해 악법을 만든 사람과 악법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크라테스와 한비의 경우처럼 미래에 자기 조국이 몰락하는 데에 동참하는 더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지배층과 기득권층은 항상 ‘사회의 안정’을 강조하고 ‘사회에 혼란을 가져온다’ 는 말로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합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사회가 무엇인가요? ‘(기득권) 사회’ 가 아닐까요? 백번 양보해 그것이 공동체의 사회라 하더라도 우리는 후손들이 제2의 플라톤이 되지 않도록 경건하게 악법에 저항해 나가야 합니다.

 

12. 폭력의 밝은 면을 들추어라

지금 국회에서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제명하는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강기갑 의원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맞서 농성을 벌였는데 야당이 점거를 풀기 직전에 몸싸움 과정에서 매트릭스 액션의 응용동작에 삑사리가 생기면서 폭력의원으로 찍혔습니다. 물론 강기갑 의원 자신도 자신의 행동이 오바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로 인해 국회에서 폭력행위를 이유로 그를 의원직에서 제명시키려는 한나라당의 처사에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향후 폭력행위를 방지한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의원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법 제정 시도에 야당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폭력은 분명 나쁜 일이기에 사회에서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나 폭력 발생의 이유를 보지 못하고 ‘폭력’ 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에 파묻힌다면 억압폭력과 저항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폭력을 자제하고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폭력이 생겼는지 그리고 누가 폭력을 유발시켰는지도 따져봐야 되지 않을까요? 이는 폭력을 더 강대한 물리력으로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지만 폭력의 근원은 교묘히 잠복되어 있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폭력의원 제명? 좋습니다. 이에 앞서서 폭력유발자와 폭력유발 세력 제명법을 먼저 추진해주세요.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이버 모욕죄 추진? 쌍수 들어 환영합니다. 그보다 ‘현실 모욕죄’를 먼저 만드세요. 국민들에게 상처 입히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부터 처벌해주세요. 믿사옵니다*~

우리는 2008년 촛불 집회에서 무수히 많은 폭력을 목격했습니다. 시민들이 전경들을 밀치거나 전경 차량을 끌어냈고 전경들도 시민들을 구타했습니다. 이 모두가 폭력입니다. 다만 전자는 불법 폭력 시위로 불렸고 후자는 공권력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법의 인정 여부에만 달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폭력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전적인 의미와 그 단어가 가진 뉘앙스나 이미지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폭력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본좌격으로 인식하는데 사전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의미의 폭력과 나쁜 이미지의 폭력을 혼동해서 악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공권력, 사법권, 자위권(自衛權) 같은 용어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테러, 살인, 폭행 등의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줍니다.

만약 ‘안중근이 친일파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고 표현하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문장만 놓고 보면 ‘폭력’ 의 이미지에 압도되어 사건의 전후배경과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알기 전에 안중근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는 인식이 먼저 두뇌에 또아리 틀지 않을까요? 안중근 의사의 경우는 그나마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기에 그의 행동이 왜곡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러나 ‘촛불 시위대가 폭력을 휘둘렀다’ 같은 경우처럼 우리에게 생소하거나 잘 모르는 사안은 일단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각인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치 판단을 하기 전에 이미 세뇌되어 합리적인 판단에 락(lock)이 걸립니다.

이래서 지배층과 보수언론은 반대세력과 저항세력에게 필사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를 도배하는 겁니다. 그리고 폭력에는 물리적인 폭력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언어적인 폭력도 포함됩니다. 명예훼손죄 같은 법이 언어폭력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어떤 사람을 때려서 다치게 하거나 죽게 했다면 우리는 그 잘못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어폭력, 특히 지배층이 가하는 언어폭력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범위와 강도가 명확하지 않아 은근슬쩍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정부와 보수세력들은 촛불 집회를 폄하하고 참여한 시민들을 모욕하는 발언들을 다량 생산했습니다. 유모차를 몰고 나온 어머니들에게 폭언을 하고 종로경찰서장의 택시비 발언까지, 그들은 사람들의 인내심을 자극하며 언어폭력을 남발했습니다. 이와 같은 언어폭력은 우리 신체에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여 더 큰 상처와 증오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흥분시켜 물리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죠.

일반인 사이에 벌어지는 말다툼도 주먹싸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참이슬 한잔 들이키고 잊어버리던지 경찰서에 가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불특정다수를 향한 지배층의 언어폭력은 그 피해와 해악이 더 깊은데도 가해자는 별다른 처벌 없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현행법상 처벌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처벌할 마땅한 법규도 딱히 없기 때문이죠.

 

13. 저항폭력은 인류의 초역사적 권리

공권력, 사법권, 자위권(自衛權), 국회의 질서유지권도 따지고 보면 폭력의 다른 이름에 불과합니다. 폭력을 합리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라는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막무가내 길거리 싸움을 이종격투기처럼 특정한 규칙이 있는 스포츠로 만든 게 바로 공권력 같은 물리력입니다. 따라서 합법화된 공권력이라도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정당성과 권위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종격투기에 눈찌르기나 낭심 차기 같은 반칙을 저지르면 실격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약자를 억누르거나 무력으로 지배하려는 억압폭력과 맞설 때는 ‘법’ 으로 인정된 물리력만 사용해야 될까요? 지금 MB와 한나라당이 시민사회에 가하는 폭력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미네르바를 구속시킨 케이스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며 낭심 차기 같은 비열한 반칙을 검찰은 정당한 가격이라고 우기는 꼴입니다. 한나라당과 검찰이 미네르바 구속 사유로 풀칠하는 이유들 - 유언비어 유포, 사회 혼란 - 을 보면 그들 자신도 그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폭력에는 저항폭력으로 맞서야 되며 이는 인류가 가진 숭고한 권리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라는 법이 있어서 의거를 감행했나요? 일제시대 때 의병들이 법전 찾아보고 거사했습니까? 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중들이 변호사에게 자문 구하고 왕을 처형했을까요?

공권력도 사회에서 합의된 규칙이기에 우리는 이를 지켜야 되지만 규칙이 악용되거나 선을 넘은 정권의 부당한 사용에 대해서는 저항폭력이 발동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권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서 제 2의 촛불이 일어날 때 ‘폭력=악’ 이라는 선입관을 버려야 됩니다. 저항폭력과 억압폭력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시민들이 저항폭력에 자긍심을 갖고 숙명의 권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2008년 촛불 집회에서는 시민과 전경·경찰이 충돌해서 부상자가 많았습니다. 전경과 경찰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 특히 부상자가 있었던 가족들은 촛불 집회에 우호적일 수 없었겠죠. 그들에게도 저항폭력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야 됩니다. 저항폭력의 참의미를 깨닫는다면 그들도 억압폭력이 가해질 때 지배층이 아닌 시민들 편에 서는 일을 참정의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경찰이나 전경 중에도 조직의 논리나 의무 때문에 원치 않는 마음으로 진압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직보다 더 큰 공동체의 안위와 발전을 위해 저항폭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고루 퍼져서, 억압폭력에 등을 돌리고 저항폭력의 포텐셜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폭력은 나쁩니다. 그러나 폭력을 유발시킨 자들과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무법폭력’ 으로 등급 저하시켜서는 안됩니다. 저항폭력을 인정하는 지배층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법에 있는 것만이 우리의 권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억압폭력에 맞서는 저항폭력은 용기와 희생정신 없이 꽃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며, 바로 우리가 가진 소중한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14. 촛불이 햇불로, 햇불을 요격으로

2008 촛불 집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3가지 사안,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 법치주의, 비폭력 원칙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절대적인 원칙이 아닙니다. 시대변화와 상황에 따라 변해야 되는 가치이며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을 빨리 개선하라는 전 인류적인 갈망이 촛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촛불 집회를 통해 긍정적인 현상도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시행된 간접 민주주의 제도에서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의사표현이 나타났습니다.

현재 국회 파행 운행과 미네르바 구속 등이 이어지자 국민소환제나 국민고발제 같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고 소수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에 대한 직접 심판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간접 민주주의 방식은 정치인과 정당이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과 성희롱 같은 행동을 반복해도 국회에서 의원 숫자 놀음에 따라 ‘과거는 잊어주세요’ 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제도를 간접 프리킥으로 하거나 직접 프리킥으로 운영하든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축구에서는 골을 넣어야 되는 것이고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본 생존권을 보장받고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주인다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촛불 집회에서 잘못된 정책과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던 것도 정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죠. 그러나 현실은 정의를 이루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정부와 보수세력이 찬양한 법치주의가 중요한 것은 사회질서 유지와 정의실현을 위해서이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도구가 아닙니다. 촛불이 직접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부각시켰기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의사표현과 권력기관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가 요구됩니다. 제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그 제도가 무엇을 위해 필요하고 어떤 컨셉으로 정의를 실현할지를 고민할 단계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촛불이 우리에게 내준 가장 심오한 과제가 아니었을까요? 다시 기억을 되감아 봅시다. 2008년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허가받지 못한 집회에 참여하고 차도로 나와 행진을 해서 교통을 마비시켰으니 실정법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범법자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우리 스스로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나 느낌이 들었나요? 오히려 청량한 기분으로 시내를 활보하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들의 머리 속에 법을 어긴다는 생각이 박혔다면 불가능했겠죠. 우리는 정의 실현에 참여한다는, 정의 실현에는 정해진 방법이나 형식이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통과의례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의식을 몸으로 체험했지만 아직 머리로는 정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몇천년 전 인류가 가졌던 정의감각과 정의실현력이 다시 깨어나는 미명기에 와있으며 우리는 이를 현대에 맞게 부활시켜야 됩니다. 그것은 ‘요격(邀擊) 정의’ 입니다.

 

15. 공공의 적을 단죄하라

중국이 진(秦)·한(漢) 제국으로 통일되기 전에는 어떤 사회였을까요? 아직 통일이 되기 전이니 전국구 법률이 없었고 땅도 넓었으니 각 지역마다 통하는 규칙이 달랐을 겁니다. 진(秦)·한(漢) 이전의 은나라나 주나라도 통일제국이 아니었으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어깨(?)들과 일종의 협력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왕조(王朝)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많았고 지금처럼 통일된 형태의 사법권이 발휘되기 힘들었죠. 그렇다면 각 지역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당시에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고 그 잘못이 개인사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분(公憤)을 사는 지경에 이르면 누구나 단죄(斷罪)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폭행을 가해서 피해를 주었다면 해당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죠. 가해자들은 일종의 ‘공공(公共)의 적’ 으로 취급됐으며 가해자에 대한 사적(私的) 처벌에 대해 사람들도 당연시 여겼고, 죄악이 심한 경우 가해자를 죽였다 하더라고 누구도 그것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대인이 이해하기에는 대단히 어려운 정서인데, 고대(古代)의 사람들은 법이 없어도 잘잘못을 가리고 처벌할 수 있는 원초적인 정의감각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사적 처벌에는 민중들이 강자(强者)의 악행을 막고 죄를 저지른 사람을 정확하게 처벌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진(秦)·한(漢) 제국으로 통일되면서 전국을 하나의 체계로 통치할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민중이 가졌던 사적 처벌 권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사법권이 민중에서 국가로 넘어가면서 지금처럼 사적 처벌이 금지되고 국가가 사법권의 주체가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민중들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정의감각이 퇴색하면서 많은 부작용이 생겼죠. 힘없는 사람만 처벌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현상과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법이 면죄부를 부여하는 일, 바로 지금 시대에도 목격할 수 있는 짓거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팬토마임으로 연기하는 장면들을 현실에서 자주 봅니다. 취향에 따라 탈 것을 카트라이더 휠체어로 교체할진 모르지만 정의실현은 극히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법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복잡해진 사회구조가 책임의 소재를 불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삼성과 이건희 일가의 영향력이 크지만 그들의 불법과 부정이 처벌되지 않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촛불은 이러한 짓눌린 현실의 벽을 도약해서 정의로운 월장(越牆)이라는 씨앗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촛불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왜였을까요?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몇천년 전의 고대인들이 가졌던 정서, 바로 잊혀졌던 정의감각에 불씨를 당긴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부정과 부패에 맞설 수 있고 그것을 단죄할 수 있다는, 공공의 적에 대한 사적 단죄 권리가 부활하는 계기가 아닐까요? 2008년 촛불 집회 때 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외국인 친구 한명이 “한국 사람들 너무 착한 것 같다. 다른 나라였으면 벌써 불 질렀을 텐데 말이야.” 라고 했답니다. 저항폭력과 사적 단죄 권리를 농담조로 표현한 게 아닐까요?

 

16. 요격(邀擊)의 정의를 부활시켜라 

우리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을 지키고 법의 원리에 따라 사회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부정과 부패를 묵인하고, 부당한 권력의 편에 설 때 법은 더 이상 법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평범한 일반인 사이의 문제는 법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문제점은 보완하고 상식과 법의 적절한 동거를 통해 풀어내면 됩니다.

그러나 법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이중잣대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의 원리에도 어긋나며 사회정의를 해치게 됩니다. 일차적으로 법의 판단을 기다려야겠지만 만약 법이 권력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면 그때는 촛불에서 보여준 바로 그 정의감각을 살려야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누구라도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요격의 권리, 바로 사적 요격권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현대사회와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걸맞게 정립하고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기득권층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건희와 삼성이 법을 두려워할까요? 왜냐하면 법이 그들 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결국 법정에 가면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되거나 유리한 판결로 마무리된다고 확신할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죠. 그래서 그들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국가의 사법권이 아니라 고대에 존재했던 공공의 적에 대한 사적 단죄입니다. 우리는 사적 단죄를 잘못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정하고 부패한 권력자에 대한 요격권은 정당한 권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자와 힘있는 자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반성시킬 수 있는 힘은 국가의 사법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시민 개개인의 정의감각과 실천력에 있습니다.

몇천년 동안 동면(冬眠)했던 권리를 하루아침에 부활시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인들이 가졌던 공분과 정의감각을 하나씩 되살려야 합니다. 그것이 폭력이 아닌 우리의 당연한 권리임을 깨닫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화룡점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정의감각을 널리 유포시키고 실행해야 됩니다. 촛불은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희열과 용기를 전 인류에게 전염시키라고 말합니다. 전 인류의 고귀한 권리로 승격시키라는 시대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국가’를 들먹이며 애국심을 강조합니다. 외국에 나가도 나라 망신시키는 짓 하지 말라고 할 정도입니다. 지금은 세상이 인터넷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금방 알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촛불이 전 인류에 미치는 영향력도 고려해야 됩니다.

만약 우리가 촛불의 올곧은 뜻을 살리지 못하고 사그라진다면 다른 나라의 기득권층이 이를 보고 열공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는 저렇게 하니까 시민들이 체념하고 포기했구나’ 하며 그 노하우를 자기들 국가에 응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이름은 치욕이 되어 인류사에 불명예로 사례로 기록될 것이며 다른 나라 시민들에게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겠죠. 진정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불상사를 필사적으로 막아야 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 재앙이 되는 샘플로 대한민국이 뽑혀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을 요격의 정의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뱀꼬랑지 하나 - 생활의 죄인 이명박

지금 MB의 독선은 훗날을 기약하거나 기대할 한계치를 넘었습니다. 면피용으로 쓸 수 있는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을 쓸 필요도 없는 빈곤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정책들과 기득권 몰아주기 마인드셋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MB가 ‘역사의 죄인’ 타이틀 획득하는 게 확실하겠지만, 이미 그는 시민사회를 훼손한 ‘현실의 죄인’ 이자 ‘생활의 죄인’입니다.

MB와 한나라당은 서민의 편이 아니며 지금 MB의 행태를 보면 과거에 그가 만들었다는 성공신화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사람들이 혹했던 MB의 성공신화는 약자를 희생시키며 이룩한 ‘성공동화(成恐童話)’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가 내건 ‘747 공약’도 좋고 MB가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분배구조가 왜곡되어 있으면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7%가 아니라 17%가 성장해고 불합리한 분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일반 시민들에게는 숫자놀음에 불과합니다. 실업률이 1% 이라도 안정되고 합리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요? 자유경쟁, 무한경쟁? 공정하게 경쟁합시다. 삼성그룹 경영권은 왜 무한경쟁없이 핏줄로 승계됩니까? 삼성이 쓰러지면 나라도 무너진다고 떠드는데 그렇다면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경영 후계자를 뽑아야 되는 게 아닌가요? 저들이 말하는 경쟁은 합리적인 경쟁이 아니며 자신들에게는 무한경쟁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삼성그룹을 포함한 대기업 경영권도 무한도전 시스템으로 바꾼다면 일반 시민들도 극한경쟁을 받아들일 욕구가 펄펄 생기겠죠. 똑같이 경쟁해볼까요?

작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기업인 출신들이 정치계에 대거 등장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낡은 정치인들 대신 기업가들의 콤팩트한 마인드가 정치에 새바람을 가져오고 경제를 살릴 거라는 희망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이명박, 정몽준, 문국현, 홍정욱 등이 있지만 이미 기대를 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기업가는 기업만 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앞으로 더 많은 기업가 출신들이 정치계로 들어와야 된다고 봅니다. 현재 기업가 출신 정치인들에게 낙담이 큰 이유는 이들 가운데 시대정신을 갖춘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래에 새롭게 도전할 기업가들은 시대정신과 합리적인 기업가정신을 균형있게 갖춘 사람들이어야 됩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 이러한 기업가들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참신한 세력들을 막는 장벽이 큰 탓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현재에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넓혀가야 됩니다.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Written by Cloud

 

 

 

 

 

 

 

 

 

 

 

by cloudplanet | 2009/01/16 17:32 | Cloud + Life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